이 새벽에 어디 가세요?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06-04-09 04:34

조회수 4,167

온 대지가 꽁꽁 얼어붙은 새벽길
서울역 지하도에는 비가 내린 듯 물이 질퍽하다.
그 물들이 누군가 소변을 본 오물인 듯 냄새가 진동한다.

여기 저기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는 노숙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고도
속수무책으로 움추려드는 나의 몸의 추위가
사치스런 엄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가슴에 노숙자들이 다가온 것은 지난 미국 집회 때였다.
뉴저지 연합교회에서 간증 집회 초청이 와서 미국에 갔었다.
그 때 나구용 목사님은 뉴저지에 왔으니 뉴욕을 보고 가라고
바쁘고 여유 없는 시간을 내어서 나에게 뉴욕을 구경시켜 주셨다.
그 때는 성탄을 며칠 앞 둔 때이었으니 성탄을 맞이하는
뉴욕의 휘황찬란함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환호와 탄성으로 서로 어깨를 껴안고 밀려다니던 행복한 인파들...
나도 성탄의 기쁨을 세계의 도시 뉴욕에서 마음껏 누리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차창 밖으로 보여진 모습은  
교회 담벼락에 몸을 의지하여 웅크리고 자고 있는 홈리스들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쓰리고 아픈지 나도 모르게
"아! 교회문을 열어주면 저들이 교회에 들어가서 잘 수 있을텐데...”
라고  소리쳤다.
이 때 나 목사님께서도  안타까워 하시면서
“그래도 교회건물 앞이니까 저들이 잠을 잘 수 있지
그렇지 않고 다른 건물이면 저렇게 잠도 못 자게 내쫓을 겁니다.
미국은 그래도 덜 춥지만 한국은 날씨가 추워서 홈리스들이 더 비참할 겁니다.” 하셨다.
한국 노숙자들은 더욱 비참하리라는 이 말이 내 가슴에 뼈속 깊이 심기워졌다.

귀국하자마자 우리나라 노숙자 실태를 알아보았다.
다행히 기록으로 나와 있는 노숙자 현황과 그들을 위한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듯하여
마음이 놓였으나 내가  실제로 만난 노숙자 상황은 기록과는 많이 달랐다.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청량리여서 현지답사를 했다.
낮 11시 40분에 다일공동체에서 점심을 준다는 곳을 찾았다.
그런데 할아버지 20여명이 그 곳에 웅성거리며 서 계셨다.
나는 “그러면 그렇지! 이렇게 춥게 자고 일어난 사람들에게 아침을 주겠지.”
하고

한 할아버지에게 다가가서
“할아버지! 이곳에서 아침도 주는가 봐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아침이 아니고 점심 먹으러 왔어. 이따가 줄설 때 앞에 서려고...”
그 때 시간은 아직 해가 뜨기 전인 6시 반이었다.
그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오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할아버지들이 저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았더라면 김밥이라도
들고 올 것을...
아니면 따뜻한 물이라도 들고 올 것을...

나는 그 길로 노숙자들을 위한 섬김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숙자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나로서는 마음만 앞서고
모든 것이 막막했다.
노숙자에 대한 아주 작은 정보라도 필요하고 같이 일해 줄  동역자가 절실했다.

우리에게 확실한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소원이 내 소원이 아니고
주님이 주신 선한 소원 이라면 그것은 주님께서 반드시 들어 주신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연결을 통해
마침내 LA에서 홈리스 사역을 4년째 훌륭히 섬기고 있는 목사님에게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마침 그 목사님도 미국의 홈리스들을 섬기며
내 나라 노숙자들을 섬기지 못하는 아픔을 가지고 계셨던 터라
노숙자를 섬기는 일에 동역하자는 제의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라 해서 모든 일이 순조롭지는 않다.
오히려 예기치 않던 방해와 오해와 가시같은 비판을 감내해야만 한다.
우선 우리에게는 노숙자들을 도울  아무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일을 돕는 후원회도 없었고 뜻을 같이하는 몇 명의 자원봉사자도 없었다.
교회 목회 사역이나 충실히 하지 또 무슨 노숙자 사역이냐는 비판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노숙자들은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자들이니 배고파 굶어 죽어도 마땅하다.
그들을 돕는 것은 악을 돕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나의 뜨거웠던 마음은 이내 찬물을 끼얹은 듯 사그러지고 있었다.
이 때 나는 미국에서 홈리스 사역을 하고 계신 목사님께 이런 글 하나를 받았다.

“나로 인해 한 사람의 홈리스들이 한 겨울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지낼수 있다면 그리고 그들의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다면
거기에 감사하고 지옥 갈 그들이 복음을 듣고 천국으로 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들은 부자들을 만나고 전도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실 줄 착각하지만
예수님의 삶을 보면 예수님은 부자를 만나시거나 권력자를 만나시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 그저 보통 사람들을 찾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홈리스들을 복잡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그저 잠잘 곳이 없어 길에서 자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불쌍한 이웃이라는 것만 생각하십시오.
입을 것이 없어 덜덜 떨고 있는 헐벗은 모습만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 형편이 되었느냐고 질책하거나
비판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도 머리 둘 곳 없이 유리하셨던 홈리스였습니다.
그들에게 크고 좋은 것을 주려고 하지 마십시오.
밥이 안되면 컵라면을 컵라면이 안되면 따뜻한 물이라도 주려 하십시오.
그들이 사모님께 받고 싶어하는 것은 밥이나 라면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진실한 사랑입니다.”

나는 이 편지를 뜨거운 회개의 눈물로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노숙자들을 향한 발걸음은 시작되었다.
아침식사는 자원 봉사자를  얻기 어려운 시간이어서
다른 봉사 단체에서 주로 점심을 담당했다.
그래서 우리는 새벽시간에 아침 급식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지금은 컵라면을 주고 있지만
주님께서 조만간 뜨끈한 국밥을 줄 수 있게 해 줄 것을 믿는다.

우리가 노숙자들을 맞이하는 프랑카드에는
“당신은 하나님께 소중한 사람입니다.”라고 씌여져 있다.
사회와 가족에게 버림받은 그들이지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깨달아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
우리 봉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날 때 밝게 웃으며
“만나고 싶었습니다. 반가와요!.”일일이 인사를 나눈다.
컵라면 배식이 다 끝났을 때 찾아온 그들에게 우리가 다 끝났다고 미안해 하면
그들은 “라면 먹으러 온 것이 아니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당신들을 만나러 온거예요.” 라고 어린아이처럼 수줍어한다.

컵라면을 다 먹고도 그들은 돌아갈 줄을 모른다.
무엇이라도 우리를 도우려고 주위를 빙빙 돌다가
우리들이 청소를 하면 같이 도와주며 즐거워한다.

노숙자!
누가 그들을 폭도라고 하는가?
그들에게 폭도의 대접을 하면 그들은 폭도가 된다.
그러나 그들을 소중한 사람으로 대접하면 그들은 이내 순하고 착한 양처럼 된다.

혹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줄 김치이니까
중국 수입 김치를 주어도 감지덕지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기에...
집에서 담근 김치를 먹기가 어려운 그들이기에
나는 집에서 김치를 담근다.
그들은 김치를 먹으며 나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보이면서
“김치맛 최고!” 라고 칭찬한다.
노숙자들에게서 나는 김치 사모라고 불리우기를 기뻐한다.
그들에게 집에서 밥을 먹는 것 같은 기쁨을 주는 일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 담그던 김치를 두 번만 담그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른 새벽 노숙자로 가장하고 오신 예수님을 만나러
설레이는 마음으로 서울역으로 달려간다.
새벽길에서  만나는 이웃들이 “이 새벽에 어디 가세요?” 물으면
“예수님 만나러요.”
나의 대답이 엉뚱하게 들리는지 눈이 둥그레진다.
나의 새벽은 이렇게 넘치는 기쁨으로 하루를 연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힌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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