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의 첫 입주자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06-04-09 04:57

조회수 2,993


주일 낮 예배 시간이 아직 한 시간 남짓 남아 있었는데
웬 여자분이 커다란 여행용 가방에 가득 짐을 싣고 교회에 왔다.
LA에서 김목사님을 만나러 온 사람이었다.
쎈터는 갑자기 이사를 끝낸 직후여서 여기저기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로
어수선한데 그의 짐은 그 한 가운데 놓여졌다.
그 녀는 김목사님을 만나더니 마치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만난 듯
좋아하며 안심하는 표정이다.

그는 15년 전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되었고
미국 이민권자와 재혼을 하게 되어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 때 어린 딸을 한국에 두고 떠나면서
그에게는 씻을 길 없는 깊은 죄책감과 상처가 생겼다.
그는 열심히 돈을 벌어 딸을 데리러 오려는 마음으로 미국으로 갔으나
재혼한 남편과도 몇 달을 살지 못하고 이혼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악담과 저주를 퍼부으면서 그를 내 쫓았는데
그녀의 영주권을 빼앗고 영주권 복사본만 주었다.

세상이치에 밝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을 챙길 줄 모르는 그는
그대로 쫓겨나와 유리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직업을 찾아 일을 해 보았으나
이번에는 악덕한 주인들이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다.
아픈 시간들을 지나면서 그에게 남은 것은 우울증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면
온순했던 그 녀는 갑자기 심각한 방어태세가 된다.
상대방보다 더 큰 목소리로 화를 내거나
상대방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을 퍼붓고는 심장의 통증을 호소한다.

그는 일정한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을 무척 두려워한다.
낯선 미국에서 연고자 하나 없이 이리저리 헤메다가
LA에서 김목사님을 만났다.
LA 거리선교회 쎈터에서 재활 훈련을 받았다.
그는 쎈터를 깨끗이 청소하고
쎈터의 식구들에게 밥을 해주고 지냈다.
그에게는 한국에 열명의 형제가 있었고
15년 전에 헤어진 딸이 그리워지자 한국에 한 번 왔다 가는 것을 소원하며 지냈다.
그의 정신적인 연약함은 어떤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그는 자나깨나  “한국에 한 번 다녀오고 싶어!”라며
막무가내로 졸라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를 측은히 여겨 미국 거리 선교회에서 한국을 다녀올 수 있는
왕복 비행기표를 사 준 것이다.

꿈에도 그리운 한국 땅에 발을 딛었지만
많은 형제들 중 그 녀를 반갑게 맞아 주는 형제는 아무도 없었다.
큰 언니 집에 두 달을 기거하는 동안
형제의 그리움은 잠깐이었고
계속 의견 충돌이 있어서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을 때 영주권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결국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체되는 동안 갈 곳이 없게 되었다.
그 녀는 한국에서 미국과 동일하게 무숙자 아침 급식을 제공하고
재활 쎈터 사역을 하고 있는 김목사님을 찾아 온 것이다.
예순 살이 넘은 얼굴 같지 않게 희고 깨끗한 피부를 가진 그 녀의 외모에서
누구도 정신적인 아픔의 증상을 나타내리라고는 추측을 못할 것이다.

한 번은 남대문 중학교 교사들이 쎈터를 방문했다.
그들은 20년 전에
장애자들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문서 선교를 할 때
나의 좋은 동역자들 이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동안의 일들을 담소를 나누는데
갑자기 그 녀가 나타나 소리를 버럭 지르며 이유 없는 화를 내는 것이었다.
그 후에 교회 성도님과의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다른 사람과 진지하게 이야기만 하면
그녀가 화를 내며 달려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 상담을 하던 성도님은 영문을 모른채 난처해 했다.

서울역 노숙자 아침 급식을 배식하기 위해 나와 함께 나가게 되었다.
배식 시간에 맞춰 자원봉사자들이 속속 도착 했다.
김목사님께서 봉사의 자리를 정해 주었다.
그런데 자신이 맡은
“밥을 퍼주는 봉사는 싫고 김치를 나눠 주겠다“고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 녀의 납득이 가지 않는 태도에 김치 봉사자였던 유 집사님이 상처를 입었다.

그 녀가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인 질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숙자가 된 것처럼 앞으로 이 센터에 입주하게 될
또 다른 무숙자들도 치료받아야 하는 정신적인 질병자로 여겨야 한다고 마음 먹었다.

하루 종일 쎈터를 정리하고 집으로 가려니
일어 설 힘도 없이 지쳐 있었다.
그런 나에게 그 녀가 또 소리를 지른다.
“사모님! 이것 저것 늘어 놓지 좀 말아요!
사모님이 늘어 놓은 것 치우기 힘들어 죽겠어요!”

“아니 당신이 쎈터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품을 챙겨 주느라
하루 종일 일했는데 뭐라구요?”
나도 모르게 울컥 치밀어 오르려는데

“그 녀는 몸도 마음도 치료 받아야 하는 연약한 지체가 아니냐?”

나의 가슴에 말씀하시며  예수님이 웃고 계셨다.
“주님! 하필이면 쎈터의 첫 번째 입주자로 그 녀를 보내 주신 것입니까?
그 녀와 만나는 다른 입주자들이 계속 상처를 입을 텐데요?”
이 때 주님이 말씀 하셨다.
“내가 이 무숙자 쎈터에 첫 번째 입주자란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는 무숙자 였어.  
그 녀가 오기 전에 내가 가장 먼저 이 곳에 들어왔단다.
나를 섬기듯 그들을 섬기거라!”
우리 쎈터의 첫 번째 입주자는 예수님.
두 번째 입주자는 LA의 홈리스였다가
오늘은 한국의 무숙자가 된 그 녀.
그 이튿날 이가 다 빠지고 얼굴이 험상궂은
세 번째 입주자가 짐을 들고 또 들어왔다.
온 몸에 뱀의 문신을 한 네 번째 입주자
부모님의 이혼으로 집을 뛰쳐나온 18살의 길호…
서울역 노숙자였다가 재활 의지를 갖고 들어온 오씨…

이제 쎈터에 누가 들어 오든지 그들을 맞이하는 방법은 똑같다.
첫 번째 입주자이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마음이면 만사는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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